고달사지 종합안내 혜목산 기슭의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이 절은 고려 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 가운데 하나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은 중요한 사찰이었다. 975년 세워진 원종대사탑비 비문에 의하면 당시에는 고달원 또는 고달선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달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번창했으나,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난다. 1998년도부터 시작한 발굴 조사는 현재 6차까지 완료하였으며 향후 7~9차 발굴 조사를 진행한 후에 정비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 주요 문화재 ㅇ 사적 - 사적 382호 여주 고달사지 ㅇ 국보 - 국보 4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ㅇ 보물 - 보물 6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 보물 7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 보물 8호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 - 보물 282호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1959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전시) - 시도유형문화재 247호 여주 고달사지 석조 여주군수 |
ㅇ 촬영일자 : 2012. 07. 14
ㅇ 촬영장소 : 고래산 고달사지터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 지정번호 : 보물 제8호 시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20-5 이 석불좌는 불상은 없어진 채 대좌만 덩그렇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고 조각솜씨가 명쾌한 4각대좌의 수작이다. 이 대좌는 장방형의 석재를 상, 중, 하대등 3중으로 겹쳐 놓은 이른바 방형대좌이다. 상대는 앙련을 시원하고 뚜렷하게 조각했고, 중대는 4면에 모두 하나의 큼직한 안상을 음각했는데 솜씨가 명쾌하며, 하대는 상대와 같은 수법의 연꽃을 복련으로 새기고 그 아래로 안상도 조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방형의 중첩과 연꽃과 안상무늬의 교체를 명쾌하고 산뜻한 조각솜씨로 조화시킨 고려 초기 역작의 석조대좌라 할 수 있다. |
ㅇ 촬영일자 : 2012. 07. 14
ㅇ 촬영장소 : 고래산 고달사지터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지정번호 : 보물 제6호 시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7-8 이 귀부와 이수는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원종대사지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석 위에 얹혔던 이수이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신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 근정전 서쪽 화랑에 진열되어 있으며 이곳 고달선원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에 의하면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869) 13세에 출가하여 상주 공산 삼랑사에서 융제선사에게 사사하였다. 22세에 양주 삼각산 장의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23세에 입당하여 서주 동성현 적주산에서 자선화상에게 사사하였으며 경명왕 5년(921)에 환국하여 봉림사에 거주하였다. 그후 광주 천왕사에서 고려 광종 9년(958) 8월에 90세로 입적하니 왕이 애도하여 원종대사 혜진이라 추시하고 ‘진영일정’을 그리게 하였으며 대사 입적 후 17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귀부는 거대한 단일석으로 조성되고 6각 귀갑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장방형의 비좌는 운문이 새겨져 있는 연화좌 위에 조출되고 상면 둘레에는 복련문이 조출되어 있다. 네 다리와 손톱 끝의 조형은 사실적이며 예리하나 귀두의 면모는 흔히 볼 수 있는 용형이다. 이수는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상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보주가 꽂혀던 흔적으로 보인다. |
ㅇ 촬영일자 : 2012. 07. 14
ㅇ 촬영장소 : 고래산 고달사지터
경고문 이 지역은 창녕 조씨 창산군파 염곡문중의 묘원조성 지역임으로 누구를 막론하고 자연을 훼손시키거나 이 지역을 오염시키는 행위 등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며 만약 적발되면 사직 당국에 고발 조치를 하겠사오니 이 지역을 이용하시는 분은 각자가 이러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995. 7 창녕 조씨 창산군파 염곡종회 |
ㅇ 촬영일자 : 2012. 07. 14
ㅇ 촬영장소 : 고래산 고달사지터
양평 구둔역 등록문화재 제296호, 1940년 건립 이 건물은 중앙선 양평~원주 구간을 개통하면서 설치한 역사이다. 대합실 출입구에 박공지붕을 구성하여 정면성을 강조하였으며, 철로 쪽 대합실 출입구에 차양을 덧달아 본채 지붕과 차이를 두어 입체감과 함께 그늘을 제공하는 등 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구둔 마을 중심에 있어 많은 이들이 이용하였지만 버스, 자가용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이용객이 급감하여 현재는 구둔역에 얽힌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
ㅇ 촬영일자 : 2012. 07. 14
ㅇ 촬영장소 : 구둔역
근대문화유산 제296호인 구둔역에 오신 고객님을 환영합니다. 구둔역의 유래 : 구둔(九屯)이란 지명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군이 이 지역 높은 산에 아홉 개의 진지를 구축하였던 전설에서 유래되어, 자연 마을 명칭으로 불리어 지다가, 1940년 4월 1일 철도가 개통되면서 역명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구둔역은 2006년 12월 4일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96호)으로 지정되어 문화재 원형보존을 위해 노후된 역사를 개보수하지 않아 이용에 불편함이 많으나, 시골 간이역의 추억과 향수로 사진, 드라마 촬영 등을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
ㅇ 촬영일자 : 2012. 07. 14
ㅇ 촬영장소 : 고래산 고달사지터
'산행지 안내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니산(인천 강화) - 안내문 (0) | 2012.08.02 |
---|---|
금오산(전남 여수) - 안내문 (0) | 2012.07.31 |
동산(충북 제천) - 안내문 (0) | 2012.06.27 |
도락산(충북 단양) - 안내문 (0) | 2012.06.27 |
가리산(강원 홍촌) - 안내문 (0) | 2012.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