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안내문

계방산(강원 평창) - 안내문

mouner(마우너) 2012. 4. 2. 23:55

 

 

 

계방산 등산안내도

ㅇ 위치 : 평창군 용평면과 홍천군 내면 사이에 위치

ㅇ 높이 : 해발 1,577m

ㅇ 특징

계방산은 평창군과 홍천군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50m), 설악산(1708), 덕유산(1614m) 다음으로 다섯 번째 높은 산이다. 이 때문에 계방산 정상에서 멀리는 설악산과 근처의 오대산, 가리왕산, 금당산, 박지산, 태기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이 산은 운두령(1080m)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488m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고 흙이 많아 등산하기에 좋다는 장점이 있다. 잘 보존된 원시림과 오색찬란한 가을 단풍, 겨울철에만 만끽할 수 있는 환상적인 설경이 이른 3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계방산은 많은 등산객 등이 찾고 있다.

ㅇ 전설(유래)

계방산에서는 옛날 용맹스럽고 무서운 권대감 산신령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용마를 타고 달리던 중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화가나서 부적을 써 이 산에 던진 이후 모든 칡이 없어졌다고 전하며 지금도 이 산에는 칡이 자생하지 못한다.

ㅇ 등산코스별 소요시간

  A코스(9.2Km) : 운두령-헬기장-정상-1276고-계방산 쉼터앞(약 4시간 소요)

  B코스(11.1Km) : 운두령-헬기장-정상 옹달샘-제2야영장(약 5시간 소요)

ㅇ 교통 및 주차공간

  대중교통 : 진부터미널(335-6307) : 08:10, 09:10, 14:40, 17:00

  장평터미널(332-4209) : 06:40, 18:40

  주차공간 : 계방산 쉬터, 제2야영장 주차장

ㅇ 음식 및 숙박업소

  - HAPPY 700 먹거리촌(계방산 노동리 및 신약수 일원)

  - 여관 및 민박

ㅇ 주변 관광지

  이승복기념관, 방아다리 약수, 신약수, 오대산국립공원, 이효석문화유적지

ㅇ 문의(연락)처

  - 관광안내 : 홍천군청 경제관광과(430-2544), 내면사무소(432-6031)

                    평창군청 문화관광과(330-2542), 용평면사무소(330-2606)

  - 사고발생시 연락처 : 홍천재난구조대(435-0145), 내면파출소(432-6112)

                                용평재난구조대(332-4207), 용평파출소(332-4313)

- 촬영일자 : 2004.02.08

- 촬영장소 : 계방산 입구(운두령)

 

 

 입산통제

 

1. 통제구역 :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산1-1림(계방산 일원)

2. 통제면적 : 1,655ha

3. 통제기간 : 매년 봄철 3.1~5.31

가을철 11.1~12.15

4. 통제목적 : 산불예방

이지역에 입산하고자 할 때에는 산림법 제98조의 규정에 의한 입산신고를 하지 아니하고는 입산하지 못합니다. 만일 신고없이 입산하게 되면 산림법 제125조의 규정에 의거 2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게 됩니다.

산림청 동부지방산림관리청장

- 촬영일자 : 2004.02.08

- 촬영장소 : 계방산 입구(운두령)

 

 

 

이곳은 이승복군이 자라던 반공의 발상지입니다.

1968년 12월 9일,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했던 북괴의 무장공비들이 북으로 도주하다가 이곳 이승복군의 보금자리에 침입했습니다. 당시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장 2학년이던 승복군은 아홉 살, 어린 나이로 감연히 항거하다가 그의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참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승복군의 그 용맹과 반공정신을 이어 받고자 그가 순절한 이곳에 비를 세웁니다. 

ㅇ 촬영일자 : 2005. 02. 08

ㅇ 촬영장소 : 계방산 이승복기념관

 

 

이승복생가안내

1968년 12월 9일밤 단란하게 살고 있던 이승복의 가족 7명 중 할머니와 아버지는 이웃에 이삿짐을 날라주러 가고 집에는 5명만이 남아 있었다.

산 속에서 내려온 무장공비 잔당 5명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하는 이승복군과 일가족을 살해하여 아이들 3명은 외양간 뒤쪽의 오지랖 물 속에 쳐 넣고, 어머니와 큰아들은 퇴비더미에 파묻어 두었으나 공비의 칼에 36곳을 찔리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큰아들 학관은 정신이 돌아와 이웃집으로 기어가 구출이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식구들은 그 날 밤중 군 견을 대동하고 출동한 수색대원

연대 초 정부에서 화전민이 살던 빈 가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함께 헐려지고 돌담과 집터만이 남아 있었다.

이 집은 2000년 겨울 이승복 일대기 기록 영화를 촬영하면서 당시의 주민과 생존자의 증언 및 사진 판독 등 고증을 거쳐(주)씨네에스트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3반에 거주하는 강규혁에게 용역을 주어 생가로 복원한 것이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질서있게 관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ㅇ 위치 :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74번지

ㅇ 규모 : 안방, 윗방, 부엌, 외양간(총 7평)

ㅇ 재료 및 형태 : 목조 귀틀집

ㅇ 관리기관 : 이승복기념관 

- 촬영일자 : 2004.02.08

- 촬영장소 : 계방산 이승복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