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안내문

치악산(강원 원주) - 안내문

mouner(마우너) 2012. 12. 11. 23:46

 

 

구룡사 유래(龜龍寺 由來)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제24호인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6년(666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대웅전터에 큰 연못이 있어 그곳에 청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불도의 힘으로 용을 쫓아내고 연못을 메워 절을 지었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하여 구룡사라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혈을 끊으면 번창할 것이라 하여 혈을 끊었으나 오히려 신도가 더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도승이 거북의 혈맥을 이으라고 하여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거북을 뜻하는 구(龜)자를 써서 구룡사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치악산 국립공원관리소장 

ㅇ 촬영일자 : 2004. 03. 21

ㅇ 촬영장소 : 치악산 구룡사 앞

 

 

구룡사 유래(龜龍寺 由來)

치악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에서 학곡리 쪽으로 약 6Km 떨어져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의상은 연못 자리가 좋아 그곳에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용들을 물리치고 절을 지었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하여 구룡사(九龍寺)라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한 노인이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진 것이라 하여 혈을 끊었는데 이후 절이 더욱 쇠락해져 갔습니다. 절이 더 이상 운영되기 어려워 폐사가 되려할 때에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절이 더욱 쇠락해진 것을 혈맥을 끊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ㅇ 촬영일자 : 2012. 06. 16

ㅇ 촬영장소 : 치악산 구룡사

 

 

구룡사 대웅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신라 문무왕 6년(666) 의상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꽃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라 하였으나 조선 중엽에 거북바위와 얽힌 연유로 하여 구룡사로 개칭하였다 전하며, 숙종 32(1706)에 중건되었다 한다.

대웅전은 전면으로 보아 기둥 위에 공포, 주심포를 두고 주심포 사이에도 공간포를 2조씩 배치한 다포 계양식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었다. 공포의 외부 제공은 앙서형이 중첩되었고 앙서 윗몸에는 각각 연꽃을 조각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내부 제공은 하나로 연결하여 당초 무늬를 조각하였다. 특히 불상 위에 있는 닫집은 중층으로 되어 특이하다.

천장의 중앙부는 우물천장을, 둘레에는 빗천장을 가설하되 연꽃과 봉황, 구름무늬 비천상 등을 채화하여 금단청과 함께 매우 화려하고 장엄하다.

이 불전은 공포 내/외부의 장식적인 조각솜씨 및 구조수법 등으로 보아 1900년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76년 보수 단청하였다. 

ㅇ 촬영일자 : 2004. 03. 21

ㅇ 촬영장소 : 치악산 구룡사 입구

 

 

원주 구룡사 보광루(原州 龜龍寺 普光樓)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

구룡사는 치악산 능선 밑의 급경사지에 동향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산지에 건립된 사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룡사의 출입은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 아래부분의 트여 있는 가운데 칸을 통로로 삼아 대웅전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누하진입방식(樓下進入方式)인데, 이러한 방식은 경사진 지형에 조성된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보광루는 구룡사의 가람배치에서 불아문의 성격을 가진 건물로 공간의 위계(位階)를 구분함과 동시에 누각 아래를 통한 진입으로 전이공간(轉移空間) 역할을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공집으로 홀처마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있는 튼실한 원형기둥을 세워 아래층을 구성하고 있다. 출입통로로 사용되는 가운데 1칸을 제외한 나머지 옆칸은 판벽으로 막아 창고 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창고 안쪽으로도 기둥을 세워 놓았으며, 각 칸마다 두 줄씩 가로, 세로로 보를 놓았다.

누각층은 대웅전 앞의 마당공간을 향해 벽체가 없이 개방시켰으나 나머지 3면은 판벽으로 처리하였고 정면의 각 칸 사이에는 2짝 판문을 달았다. 기둥은 1층보다 빈약하고 배흘림이 없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고, 이익공형식으로 연꽃과 연꽃 봉우리를 장식하였으며, 기둥머리에는 봉황머리를 장식하였다.

누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우물반지이다. 

ㅇ 촬영일자 : 2012. 06. 16

ㅇ 촬영장소 : 치악산 구룡사 일주문

 

 

구룡소

 

구룡소는 기암의 차별 침식에 따라 낙석들이 층층으로 쌓여 만들어진 여울형 소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구룡사 창건 당시 용 한 마리가 연못 속에 살다가 승천하였다하여 용소(龍沼)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ㅇ 촬영일자 : 2012. 06. 16

ㅇ 촬영장소 : 치악산 구룡사

 

 

비로봉 미륵불탑

치악산 비로봉에 세워진 돌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일명 용진수)이라는 사람이 꿈에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혼자서 탑을 쌓았던 것인데, 1962년 9월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 된 돌탑을 모두 쌓았으나 1967년과 1972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던 것을 용창중씨가 각각 그해에 복원하였다. 1994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륵불탑 중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의 탑은 ‘산신탑’ 그리고 북쪽의 탑을 ‘칠성탑’이라고 한다.(용창중씨는 1974년 작고하였음) 

ㅇ 촬영일자 : 2012. 06. 16

ㅇ 촬영장소 : 치악산 비로봉

 

 

사다리병창길

거대한 암벽군(岩壁群)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 있고, 암벽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져 사시사철 독특한 풍광(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사다리병창길’이라 한다. 병창은 영서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함. 

ㅇ 촬영일자 : 2012. 06. 16

ㅇ 촬영장소 : 치악산 사다리병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