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성 사적 제139호 소재지 :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포내리 문수산성은 강화의 갑곶진을 마주보는 김포쪽 육지의 문수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채이다. 이 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입구를 지키는 성으로 조선 숙종 20년(1694)에 축성되었고 순조 12년(1812)에 중수되었으며,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군과의 격전을 치른 곳이다. 1866년 9월 8일 프랑스 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성을 점령한 후 동년 9월 18일 문수산성을 침공하여 올 때 문수산성에는 봉상시사 한성근이 대원군의 명을 받고 성을 수비하여 프랑스군과 싸웠으나 결국 무기와 병력의 열세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때 프랑스군은 성내 민가를 불태우고 유린하였다. 이 격전으로 성의 해안쪽 성벽이 파괴되고 문루가 모두 불타 없어졌다. |
ㅇ 촬영일자 : 2004. 12. 26
ㅇ 촬영일자 : 2010. 3. 14
ㅇ 촬영장소 : 문수산 문수산성
문수산성
사적 제139호 소재지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산35-1외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이다. 성이 있는 산은 서쪽으로 강화를 건너는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조선 숙종20년(1694)에 쌓은 것으로 당시 둘레가 2.4km이고, 여장(女墻)이 2,173개 있었으며, 성문이 3개 있었다. 이후 순조12년(1812)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성벽은 장방형 혹은 정방형으로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여장을 둘렀다. 성문은 취예루(取豫樓)와 공해루(控海樓)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暗門)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 성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스 제독이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출토 유물은 조선 시대 후기의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며,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이 일부 남아 있다. |
ㅇ 촬영일자 : 2010. 3. 14
ㅇ 촬영장소 : 문수산 북문
현재 위치는 문수산 정상부(해발 376m)로서 문수산성 장대지(將臺地)가 있는 지역입니다.(장대지 : 장수가 주변의 정세를 파악하여 쥐휘하던 곳으로 보통 산성의 정상부에 있음) 문수산성 장대지는 삼국시대 기와편과 고배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것은 조선후기 문수산성을 쌓기 전에도 이 자리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장대지의 기단부에 사용된 전돌들이 상당수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전돌축조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향후 문수산성 보존 및 정비계획에 따라 연차적으로 발굴조사 및 복원하여 명실상부한 문화유적지로써의 면모를 갖추어 관광자원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2008. 9 김포시장 |
ㅇ 촬영일자 : 2010. 3. 14
ㅇ 촬영장소 : 문수산 정상
현재 위치는 문수산 정상부에서 남서측 방향으로 내려오는 경사지 아래의 평탄지로 군용 헬기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왼편 도지도에는 축조 당시의 성곽과 성내 시설물 그리고, 전통사찰인 문수사가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측으로는 마담(馬潭)이 있습니다. 공해루의 위쪽으로 성내의 시설물들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병영터였음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포시에서는 연차적으로 성곽과 성내 시설물(병영터 등)을 복원하여 명실상부한 문화유적지로써의 면모를 갖추어 관광자원화해 나가는 한편 자라나는 후세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2008. 9 김포시장 |
ㅇ 촬영장소 : 문수산
현재 위치는 성곽 남측의 동서방향 능선을 따라 축조된 구간으로 2005년에 발굴조사와 200m의 성벽을 복원한 구간입니다. 복원된 성벽의 높이는 2.7m이며, 성벽 상부의 여장은 연차적으로 복원할 것입니다. 성벽 내측으로는 일정거리를 이격한 후 등산로를 조성하여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한편 등산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실된 성곽을 보존하는데는 많은 재원이 투입되고 있는 관계로 연차적으로 복원하여 명실상부한 문화유적지로써의 면모를 갖추어 관광자원화해 갈 계획입니다. 2008. 9 김포시장 |
ㅇ 촬영장소 : 문수산
해발 376m의 문수산에는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입구를 지키기 위해 숙종 20년(1694) 정상부에서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축성한 문수산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수산성의 연장은 6,123m이며, 서문, 남문, 북문과 동아문, 남아문 등이 있었으나 해안쪽의 성과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의 잔존구간은 4,640m이고 유실된 구간은 1,483m입니다. 그간 김포시에서는 남문과 북문을 복원하였고, 성곽은 북문과 남문, 남아문(홍예문) 구간의 성곽 434m를 복원하였으며, 성벽보호를 위하여 성곽 주변으로 잡목 제거작업을 하였습니다. 또한 2007년 문수산성 보존 및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여 연차적으로 성곽을 복원해 나가는 한편 성곽 내부 시설물(병영터 등)을 복원하여 명실상부한 문화유적지로써 관광자원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문수산을 찾은 등산객 여러분! 이 곳은 남문으로부터 약 1,500m 지점에 위치한 성벽구간입니다. 성곽 보호를 위해 성벽 상부로 등산하는 행위는 자제하여 주시고 등산로를 이용하시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데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2008. 9 김포시장 |
ㅇ 촬영장소 : 문수산 팔각정 부근
문수산성 문수산성은 사적 제139호로서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성으로 축성 당시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모두 불탔다. 1993년부터 북문을 복원하기 시작하여 현재 총길이 6Km의 성곽을 복원 중에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의 길이는 4Km로 등산하다보면 발 아래로 성곽이 이어지는 광경을 느낄 수 있다.
문수사 및 풍담대사부도, 비 신라 혜공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876년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는 문수사는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수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풍담대사는 조선 중기의 선승으로 어렸을 적에 뜻한 바 있어 전국을 돌며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문수곡에 머물러 여생을 불교 전파에 힘써 절을 더욱 번창하게 하여 당시에 많은 신도들이 찾았다고 한다. 현재는 문수산 삼림욕장 초입에서 신도를 맞고 있고 그 위치의 도량에는 전각만이 남아 있다.
문수산 한남정맥의 최북서쪽에 위치한 문수산은 해발 고도는 376m로 아기자기한 등산의 맛을 주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산아래에 염하강과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맑은 날 강 건너엔 손에 닿을 듯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어 산행과 더불어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산수의 어울림과 분단 역사의 현장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문수산에는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있어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산에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있어 피톤치드와 음이온 등을 마시며 가벼운 휴식과 산책하기에도 제격이다. |
ㅇ 촬영장소 : 문수산 산림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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