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안내문

감악산(경기 파주) - 안내문

mouner(마우너) 2012. 4. 1. 21:28

 

임꺽정봉(매봉재)

감악산에 위치한 봉우리로 부도골 북쪽에 있으며 생긴 모양이 매와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 봉우리 밑에는 굴이 있으며 다섯걸음 들어가면 구덩이가 나오는데 컴컴하여 깊이와 넓이를 추축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일명 응암봉(應巖峰)이라고도 하는데 적성현지(1842)․적성현지(1871)에 모두 등장한다.

한편 응암봉 밑에 있는 굴에 대해서는 설인귀굴 또는 임꺽정굴이라고 부르는데, ○○에서는 고려○○○ 남을진 선생이 은거한 남선굴이 바로 이 굴이라고도 전하여 진다. 

- 촬영일자 : 2008.2.23

- 촬영지 : 감악산 임꺽정봉

 

 

안내문

국립지리원에서는 측량법령에 따라 우리나라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국가기준점인 삼각점을 설치하여 공공 및 민간분야에서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각점은 전국에 일정한 간격으로 10,000여점이 설치되어 지도제작, 지적측량, 건설공사, 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을 위한 기준점으로 이용되는 국가 중요시설물로서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이러한 삼각점은 누구든지 파손하거나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되며 만약 무단으로 훼손하는 경우에는 이 지역의 모든 측량을 실시할 수 없으며 관련자는 측량법령에 따라 벌을 받게되오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설치된 삼각점(문산22)의 위치는 표주의 심자선 중심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 동경 : 126°58′17″

- 북위 : 37°56′09″

- 높이 : 약 675m

2002. 8.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장

전화 031)210-2651~2 

- 촬영일자 : 2008.2.23

- 촬영지 : 감악산 정상

 

 

임꺽정굴(설인귀굴)

감악산 남쪽 매봉재에 위치하여 있는 굴로서 고구려를 치러 온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곳에 진을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설인귀굴로 알려진 이곳은 일제초기의 문헌에서 처음 확인된다. 조선지리(朝鮮地理, 1918)에서는 봉암사(鳳岩寺)를 소개하면서 이 절이 바위로 이루어진 굴 속에 있는데 설인귀가 혈거한 곳으로 전해진다고 하였다.

한편, 마을 노인들은 임꺽정굴이라고도 하며 감악산 정상 부근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 양 주 시 - 

- 촬영일자 : 2008.2.23

- 촬영지 : 감악산 임꺽정굴

 

 

 

동양 최초 백옥석 관음상

일사천하 해동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명승 감악산 범륜사 도량의 관음상은 금번 한․중 친선교류로 을해년(1995년) 정초부터 중국과 인연을 맺어 하북성 아미산에서 백옥 십일면 관음상을 신 조성하기 시작 만 7개월만에 완성하여 오만리 수륙을 지나서 천진항까지 도착 한국으로 수송하던 중 천년만의 대 홍수로 인하여 약 1개월간 지체한 후 음력 본 8월 인천항에 무사히 강림하시고 추석절을 지나서 동월 17일자로 적성면 광장에서 임시 3일간 심야를 경과하시고 30일 31일 양일만에 본사 성지도량에 안착하게 되었으며 윤 8월에 중국 조형사 대표 조준구외 3인이 만 3개월에 걸쳐 봉안하였습니다.

한국 최초 백옥석 관음상을 본사에 모신 것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신통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본사 사부 대중과 군, 관, 민 불자의 원력이요 백운청산이 난무하여 관음조의 염불소리와 심곡 운계 폭포의 탄금소리가 항상 들려오니 이곳 자비 도량에서 기도자는 소원성취하여 불조의 혜명을 드 날리고 국가의 번영과 중생 근기따라 제도하심니다.

(관음 신장 : 7m 좌대 : 4m) 

- 촬영일자 : 2008.2.23

- 촬영지 : 감악산 범륜사

 

 

감악산(紺岳山)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원산, 낭림산,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까지 내려와 소백산, 지리산까지 뻗은 제일 큰 산줄기가 바로 우리나라 백두대간(白頭大間)이다.

이 백두대간이 금강산을 향해 달리다가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북정맥(韓北正脈)이며 한북정맥 양주에서 갈라져 적성쪽으로 뻗어 간 산줄기가 감악산이다.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군 남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해발 675m의 산으로 삼국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감박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고려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감악’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 도성을 중심으로 북악, 송악, 관악, 삼악 등과 함께 경기 오악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감악산은 신라 때부터 명산이며 이 산에 춘추로 별기은을 지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범륜사를 비롯하여 수월사, 봉암사, 미타암 등의 당과 절이 있으며 중부지방에서 주요한 신앙처의 구실을 하며 지금도 봄철에는 기도를 드리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산중에는 지금은 폐사되어 없어진 감악사가 있었는데 삼국시대 이 절의 뒷산 서쪽 봉우리에 용지가 있었는데, 가물거나 장마에도 물이 변하지 않고 기도에 감응이 있었다고 한다. 산의 정상에는 ‘감악산신라고비’(속칭 ‘빗돌대왕비’, ‘설인귀사적비’)가 있는데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삼국간의 혈투장이었고 거란 침입과 한국전쟁때 고량포 싸움의 주 전지였다.

파주시장 

- 촬영일자 : 2008.2.23

- 촬영지 : 감악산 입구

 

 

감악산비(紺岳山碑)

- 파주시 향토유적 제8호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 182

감악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이 고비는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석비로 높이 170cm, 너비 70~79cm의 규모이다. 이 비는 글자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沒子碑」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비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속전(俗傳)에 의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있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고비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이 비를 조사한 결과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와 흡사하고 적성지역이 전략적 요충지로서 진흥왕대에 영토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순수비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그 역시 결론을 낼만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비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촬영일자 : 2008.2.23

- 촬영지 : 감악산 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