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일원 사적 및 명승 제4호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처음 건립한 이래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금동미륵삼존불상을 갖춰 법상종의 3대 가람으로 발전하여 오던 중 임진왜란때 불타버려 조선 인조 2년(1624)까지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건립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 및 주변에는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팔상전(국보 제55호), 석인지(국보 제64호) 등 국보 3점, 보물 6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 문화재 13점 등 다수의 지정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1990년에 청동미륵대불을 완성하고 2002년 개금불사한 100척의 금동미륵대불이 장엄한 모습으로 중생을 어루만지고 있다. 산중에는 70여 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 소실되고 10개만이 수도처로 유지되고 있으며, 속리산을 포함한 법주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
ㅇ 촬영일자 : 2005. 03. 20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입구
목욕소(沐浴沼) 조선조 7대왕 세조가 국운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법주사에서 대법회를 연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세조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졌다 하여 목욕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
ㅇ 촬영일자 : 2005. 03. 20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목욕소
목욕소(沐浴沼) 조선 7대왕 세조가 법주사에서 국운의 번창 기원을 위한 대법회를 연 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藥師如來)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졌다 하여 목욕소라 불린다. 속리산국립공원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목욕소
문장대휴게소 부지 생태복원과정 - 복원전 지난 1976년 상주시에서 신축한 노후 시설물(휴게소)로서 주변 환경오염을 유발시키는 속리산국립공원에 대표적인 환경저해시설이었음. - 복원중 상주시 및 대구 경희교육재단과 협의 후 2008년 문장대휴게소 철거, 생태복원을 위한 주변 훼손지 복구와 편의시설 시공 중인 모습 - 복원후 속리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문장대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탐방객 여러분께서 지켜봐 주시기 바라며 자연보전과 고객만족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속리산국립공원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문장대휴게소 자리
문장대(文藏臺) - 우리 산의 자랑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岩峯)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문장대
속리산 문장대 道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道를 멀리 하였고 산은 世俗을 떠나지 않았는데 世俗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여진 俗離山 문장대 1054m 구름 속에 갈무리 져 雲藏臺라 하다가 世祖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하여 文藏臺 했으니 우러러 宇宙의 장대함을 보고 구부려 品類의 繁盛함을 살핀다는 奇妙의 極致 頂上에는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인 곳이 있으니 태초 生命 탄생의 神秘를 일러 주도다 동쪽으로 칠형제봉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황봉이 이어졌고 서쪽으로 관음봉 묘봉이 솟았으며 비껴서 낙영산과 도명산이 다가선다. 남쪽 아늑한 곳에 법주사를 앉혀 法脈을 잇게 했으니 빼어난 기품 浩然의 氣槪여 造物主의 조화여 오! 仙界의 아름다움이여! 박찬선 글짓고 김정홍 글쓰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문장대 표지석 뒷면
경업대(慶業臺) 이곳은 조선 인조(1594~1646)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그의 이름을 따서 경업대라 불리게 되었다. - 신선대(神仙臺) : 백학(白鶴)이 날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담소를 나누던 봉우리라 하여 신선대라 불리게 되었다. - 입석대(立石臺) : 열린 돌 위에 비석처럼 우뚝 선 돌(1,016m)로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세운 것이라 전해오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경업대
세심정 절구의 유래 이 절구가 실제로 사용되었던 시기는 13C~14C로 추정되며 이곳 지형을 이용한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아서 밥과 떡과 곡주가 만들어졌다 한다. 이 절구가 만들어졌던 시기에도 약 400여개의 작은 암자와 많은 토굴이 있어 속리산의 비법한 기운을 받아 공부하길 원하는 많은 고승과 도인, 학자들이 이곳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고, 또한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제공되는데, 손님 중에는 아주 특별한 신분도 있어, 이곳에서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다 가는 곳이기도 하여 곡식은 국가에서 제공되었다 한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세심정 입구
법주사 석연지(法住寺 石蓮池) 보물 제64호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伏連帶,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높아 거대한 석연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듯이 우리의 현실은 서로가 시기하고 모함하는 연못의 흙탕물과 같은 세상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착하게 생활하면 내세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적인 교리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통일호국 금동미륵대불 연혁 신라 혜공왕 12년(서기 776년)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 그때부터 모신 미륵부처님을 조선조 고종 9년(서기 1872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 마련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 일제치하인 1939년에 장석상 당시 주지스님이 대시주 김수곤의 후원 하에 김복진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하던 중 약 80%의 공정상태에서 6.25 동란으로 중단되었다. 1963년 박추담 주지스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장관과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복원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시멘트 미륵부처님이 완성, 회향되었다. 1986년 류월탄 주지스님 당시, 붕괴직전의 시멘트 미륵부처님이 해체되고 4년 뒤인 1990년 4월 청동미륵부처님을 다시 조성해 모셨다. 기존 조성 시멘트 불상의 크기와 형상을 그대로 복사해서 청동불로 바꾼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 석지명 주지스님이 호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해서 국난극복과 민족화합, 2002 한일 월드컵행사의 성공 개최 및 세계평화를 발원하며 검푸른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시작했다. 2년여의 노력으로 2002년 6월 7일 금동미륵대불 회향대법회를 갖게 되었는데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님을 복원한 셈이다. 개금방법은 건식전기도금공법으로 순금 3미크론 두께로 연도금면적 900m2에 황금 80Kg이 소요되었고, 재원은 신심어린 3만여 불자의 시주금으로 충당되었으며, 공사 연 동원인력은 총 4,500여명이었다. |
ㅇ 촬영일자 : 2005. 03. 20 / 2011. 05. 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 국보 제55호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어졌고,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5층 목조탑 건축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八相圖)가 모셔져 있으므로 이 5층 목탑을 팔상전이라고 부르게 된 듯하다. 전체 높이는 약 22.7m로서 현존하는 한국의 탑 중에서 제일 높은 것이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법주사 쌍사자 석등(法住寺 雙獅子 石燈) 국보 제5호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은 부처의 자비로 명랑한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의 재앙(불교에서의 8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창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조 유물에 사자를 조각한 것은 삼국시대 이래 많은 예를 볼 수 있으나 현존하는 석탑, 석등에 조각된 사자상 중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 가장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석등에 비해 불을 켜는 화사석과 그 위를 덮는 지붕돌이 큰 것이 특징이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법주사 사천왕석등(法住寺 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 소재지 :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혜공왕(765~780, 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사석(불을 켜놓는 부분)은 8각으로 4면에 창(窓)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고, 지붕돌(석등의 위를 덮는 돌) 정상에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받침이 남아 있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915호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얕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입니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군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산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입니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입니다. 세 분 부처님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우리 사람에게는 정신 즉 마음이 있고, 공부를 하면 지식이 있게 되는 즉 덕이 있고, 사람마다 제각기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셋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왼쪽 부처님은 덕을, 그리고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원래 한 분이지만 우리 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몸(三身)으로 모셔 놓은 것입니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법주사 철확(法住寺 鐵鑊) 보물 제1413호 소재지 :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철확은 무쇠로 만든 솥이다. 법주사에 전하여 오는 말로는 신라 성덕왕때(720~736 재위)에 조성하였는데, 당시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크기는 높이가 120cm, 직경 270cm, 둘레가 1,080cm 이며 두께는 10cm나 된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솥 중에서 가장 큰 솥이다.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경내
속리산 ㅇ 개요 “속세를 떠난다”라는 뜻으로 불리는 속리산 국립공원은 한반도의 중남부를 지나는 소백산맥의 줄기에 위치하고 있다. 최고봉인 천황봉(1,057m)과 문장대 등 우뚝 솟은 봉우리와 수려한 계곡들은 낙동강, 금강, 남한강의 발원지가 되고 있으며,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맑은 계곡물과 어우러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 국립공원은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와 문경시에 걸쳐, 총면적이 283.4㎢이며, 속리산을 중심으로 구병산, 백악산, 도명산 등의 산과 화양동, 선유동, 쌍곡동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서기 553년에 창건된 법주사에는 수많은 국보와 보물이 소장되어 있고, 높이 33m에 이르는 청동불상은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ㅇ 자연경관 - 산봉(m) : 천황봉(1,057), 비로봉(1,032), 문수봉(1,031), 보현봉(690), 관음봉(985), 묘봉(874), 태봉(540), 수정봉(580), 길상봉 등 - 기암 : 문장대, 입석대, 청법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봉황대, 산호대, 학소대 - 계곡 : 화양동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 만수계곡, 서원계곡 등 - 폭포 : 오송폭포, 장각폭포 등 - 화양구곡 :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ㅇ 문화재 - 국보 : 3점 법주사 쌍사자석등(5호), 팔상전(55호), 석연지(64호) - 보물 : 8점 법주사 사천왕석등(15호), 각연사 비로사나불좌상(433호), 상오리 칠층석탑(683호), 법주사 마애여래의상(216호), 법주사 신법천문도(848호), 법주사 대웅보전(915호), 법주사 원통보전(916호), 괴불탱화(1259호) - 지방유형문화재 17점, 기념기념물 2점 ㅇ 사찰, 사지 및 암자 - 법주사, 각연사, 성불사, 중사자암, 복천암, 수정암, 공림사, 채운사, 문장사, 미타사, 탈골암 등 |
ㅇ 촬영일자 : 2011.05.14
ㅇ 촬영장소 : 속리산 법주사 입구
입석대 우리산의 자랑거리 법주사 동북방 5.5Km 관음암에서 1Km 지점에 위치하며 전설에 의하면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 끝에 세운 것이라 한다.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
ㅇ 촬영일자 : 2005. 03. 20
ㅇ 촬영장소 : 속리산 입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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