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탑(男妹塔) 남매탑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 지점인 삼불봉 밑의 옛 청량사 터에 탑 2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5층(보물 제1284호), 다른 하나는 7층(보물 제1285호)으로 청량사지쌍탑이라고도 불리우며, 남매탑이란 이름에 걸맞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 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이 입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와 놓고 갔습니다. 은공을 보답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처녀는 상주사람으로 혼일을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날씨도 추운 한 겨울이었습니다.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자 스님은 수도승으로서 남녀의 연을 맺을 수 없기에 처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으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기를 바랬습니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게 되자, 이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건립하여 두 스님의 사리를 모시게 되어 “남매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ㅇ 촬영일자 : 2008. 05. 24
ㅇ 촬영장소 : 계룡산 남매탑
청량사지 5층 석탑 보물 제1284호 소재지 :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 3-1 청량사지는 ‘청량사’라는 글이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의 절터이다. 청량사의 터에 있는 석탑으로 7층 석탑과 더불어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고도 불리운다. 5층 석탑은 낮은 단층 기단 위에 4층까지 완전하나 5층은 몸돌과 지붕돌 일부만 있으며, 상륜부의 일부도 남아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상층부가 훨씬 작아져 균형이 맞지 않으나, 우주와 면석은 각각 별개의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의 우주만 배흘림의 흔적이 보이고 4개의 얇은 돌로 된 지붕돌은 긴 처마 끝에서 약간 치켜 올라갔다. 백제계통 양식의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
ㅇ 촬영일자 : 2008. 05. 24
ㅇ 촬영장소 : 계룡산 남매탑
청량사지 7층 석탑 보물 제1285호 소재지 :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 3-1 청량사지는 ‘청량사’라는 글이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의 절터이다. 이 절터의 동쪽에 석탑으로 5층 석탑과 더불어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고도 불리운다. 7층 석탑의 기단부는 2개의 돌로 되어 잇고, 우주는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 7층 중에서 1층의 몸돌이 다른 층보다 길며 직사각형의 감실이 있고, 2, 3, 4층은 중건할 때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의 끝은 약간 치켜올라 갔는데, 지붕의 윗부분은 비교적 가파르게 경사져 있다. 7층의 지붕돌 층급 받침을 제외하면 모두 2단의 층급받침을 하고 있다. 백제식 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
ㅇ 촬영일자 : 2008. 05. 24
ㅇ 촬영장소 : 계룡산 남매탑
계룡산국립공원 산의 생김새가 마치 ‘닭벼슬을 쓴 용’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려고 신도안(현 계룡시)를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했던 무학대사가 산의 생김새를 보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닭과 용을 따라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총면적은 64.68㎢으로 행정구역상 대전광역시, 공주시, 계룡시, 논산시의 4개 시에 속하며, 지리산, 경주에 이어 1968년 12월 31일에 세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계룡산의 문화재 국보는 갑사 삼신불괘불탱,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으로 2점이 있으며, 보물로는 갑사 동종, 갑사 부도, 갑사 철당간 및 지주, 계룡산 중악단, 선조 2년간 월인석보판목, 청량사지 오층, 칠층석탑으로 7점이 있습니다. 신원사는 계룡산의 서남쪽에 자리한 사찰로 백제 의자왕 11년 보덕화상이 창건하고 조선초 무학대사가 중건한 고찰입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산신제를 지냈다는 중악단의 유래가 담긴 역사적 의미가 큰 사찰입니다. 계룡 8경은 계룡산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8곳을 말합니다. 천황봉 해돋이, 삼불봉 겨울눈꽃, 연천봉 해넘이, 관음봉 구름, 동학계곡 수림의 새순, 갑사계곡 단풍, 은선폭포의 자욱한 안개, 오누이탑의 밝은 달이 그것입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신원사 입구
신원사 주차장 버스 안내 덕성여객 논산(시점)→시장→오거이→천동→노성→상원→신원사(종점) 덕성여객 논산(시점)→시장→오거이→천동→노성→상원→하마루→신원사→갑사(종점) 10번 공주(시점)→계룡→경천→신원사(종점) 2번 충남대앞(시점)→유성시외버스터미널→현충원 전철역→국립현충원→박정자삼거리→반포→충남과학고→마암→내흥→중장삼거리→갑사→중장삼거리→하대삼거리→신원사(종점)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신원사 입구
신원사 안내문(新元寺 案內文) 계룡산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열반종의 개종조 보덕화상이 창건한 이래 고려 태조 23년(940)에 도선국사가 법당만 남아 있는 것을 중창하였고 충렬왕 24년(1209)에 부암화상에 의하여 중건되면서 중수를 거듭하여 왔는데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 2년(1393)에 무학선사가 중창하면서 영원전을 세웠고 고종 13년(1876)에 보련화상이 중창하였으며 고종 22년(1885)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어수선한 나라가 일신 발전하여 신기원이 이룩되기를 염원하여 신원사를 신원사로 고쳐 현판을 달았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1982년에 원융스님에 의하여 독성각, 계룡선원, 종각, 요사채가 신축되고 청동 범종도 새로 주조되었고 운담 스님의 원력으로 1989년 대웅전을 보수하고 오층석탐이 새로 건조되고 1998년 사천왕문이 복원되었다. 신원사의 가람배치는 남향으로 자리잡은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을 중심으로 동서로 배치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금당 앞에 있는 오층석탑의 중앙을 연결하는 남북의 일직선상에 사천왕문이 위치하여 일탑 일금당식의 백제가람 배치방식을 따르고 있다. 동편에 자리잡은 영원전은 일반 사철의 명부전으로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이들 가람의 동쪽에 조선왕실이 건립한 궁궐 형태의 웅장한 계룡산 중악단(보물 제1293호)이 있고 전면에는 고려 초기에 건립된 오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가 있으나 현재는 상층부가 훼손되어 사층만 남아 있다. 서편에 배치된 가람으로는 나반존자와 칠원성군을 봉안한 독성각이 있고 그 앞쪽에 종무소로 쓰이는 대방이 있으며 요사와 범종각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앞뜰에는 오층의 석가여래진신사리탑과 석등 이기가 배치되고 있는데 모두 최근에 조성된 것들이다. 또한 국보 제299호로 조선조 인조 2년(1644)에 제작된 11.18m×6.88m 크기의 노사나불화를 봉안하고 있다.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산하국토와 국민정신을 하나로 믿는 신원사 주변에는 고왕암 등운암 보광원 금룡암 소림원 불이암 등이 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신원사
공주 계룡산 중악단 보물 제1293호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 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 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지고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시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중악단
연천봉 낙조(連天峰 落照)(계룡팔경 제3경) 계룡산의 주능선에서 문필봉에 이어져 내려 돌올하게 솟아오른 연천봉은 해발 740m이다. 갑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좌우로 하여 천황봉과 쌀개봉, 문필봉, 삼불봉 등이 수목에 가린 옷깃을 제치며 우뚝 서 수목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눈 아래 저 멀리에는 상월 등과 계룡지, 경천지 등이 펼쳐지고, 쾌청의 날씨에는 번쩍이며, 저녁노을을 물들여 해지는 모습은 가히 절경으로 계룡산의 제3경을 자랑한다. 산정 바로 아래에는 등운암이 있어 탐방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연천봉
고통받는 소나무 V자형으로 깊게 패인 상처는 일제말기(1943~45년)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군수물자인 항공기 연료료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상처에 의해 생장이 어려워진 소나무는 이 나무처럼 꿋꿋하게 자라기도 하지만 솔잎흑파리 등의 병충해에 약하여 쉽게 죽기도 한답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갑사 부근
공주 갑사 동종(公州 甲寺 銅鍾) 보물 제478호, 높이 131cm, 입지름 91cm 조선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진 종이다. 종의 꼭대기 용뉴부에는 두 마리의 용이 용두를 힘차게 뻗치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종의 몸통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따라 두었으며, 그 사이에는 구름 위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의 몸체에 만든 시기를 표시한 명문이 있어 우리나라 종의 변천을 이해할 수 있으며, 갑사사(甲士寺)라는 표기가 있어 절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갑사
갑사(甲寺)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서쪽에 위치한 이 절은 백제 구이선왕 원년(420)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보광명전 대광명전 등을 중건하여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전하며 신라의 의상대사에 의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는 무영대사가 중창한 기록이 보이며, 조선시대 임정, 정유 두 병란에 모든 건물이 불에 타 폐사된 것을 선조 37년(1604)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고, 효종 5년(1654)에 사우를 개축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다. 갑사의 원위치는 지금의 대적전이 있는 곳으로 대형의 초석들이 정연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규모가 짐작되며, 사명 또한 조선 초기에는 계룡갑사라 하였으나 후기에 갑사로 바뀐 것 같다. 현존 건조물로는 해탈물, 대웅전, 대적전, 적묵당, 강당, 삼성각, 진해당, 팔상전 등이 있으며 표충원은 임란시 승병장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이외에도 석조보살입상, 철당간 및 지주, 석조부도, 석조약사여래입상, 동종, 선조 2년간 월인석보판목, 갑사 사적비, 공우탑 등이 있어서 천년 고찰의 면모를 더해주고 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갑사
갑사구곡(甲寺九曲) 일제 강점기 때 윤덕영이 계룡산에 들어와 간성장이라는 별장을 짓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절승을 이룬 곳마다 큰 바위돌에 구곡경불을 설정(절승 - 경치가 비할 데 없이 빼어나게 좋음, 또는 그 경치) 개인의 풍류취향을 반영, 주역의 이치를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보고 즐김. “용과 닭”을 주제로 계룡산의 장소 정체성 부각 제1곡 용유소 - 용이 노니는 소(沼) 제2곡 이일천 - 수정봉과 연천봉 발원, 계곡물의 합수지점 제3곡 백룡강 - 여름 우기에 물보라가 마치 흰 용이 꿈틀대는 것과 같은 곳 제4곡 달문택 - 연못으로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긴 곳 제5곡 금계암 - 금계포란(金鷄抱卵) 또는 천조(天鳥)인 닭, 새벽을 알림 제6곡 명월담 - 달 밝은 밤 잔잔한 물위에 비치는 달빛이 마치 하늘이 물속에 있는 듯 한 절경 제7곡 계명암 - 계룡산이 처음 열릴 때 산 속에서 닭이 날개짓을 하며 울었다고 하는 바위 제8곡 용문폭 - 자연 폭포로 약 10m 정도의 낙수광경이 절경인 폭포 제9곡 수정봉 - 산봉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백색을 띈 암석으로 피라미드형의 바위산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갑사 입구
계룡산국립공원 계룡산국립공원은 1967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공주시, 계룡시, 대전광역시, 논산시 4개 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학사(724년), 갑사(420년), 신원사(651년) 3개의 천년 사찰이 있고 국보 2점과 보물 10점이 있으며, 계룡산의 어원은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과 같다하여 유례가 됐습니다. 계룡산은 예부터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로 산태극 수태극 문양으로 펼쳐있다하여 매우 신성시 여겨졌습니다.
ㅇ 촬영일자 : 2012. 10. 28
ㅇ 촬영장소 : 계룡산 갑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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