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둘레길 강서둘레길은 개화산, 치현산, 서남환경공원, 강서한강공원을 잇는 총연장 11.19Km로 제1코스 3.35Km, 제2코스 3.53Km, 제3코스 4.31Km이며, 강서둘레길을 돌며 약사사, 개화산전망대, 호국충혼비, 매타쉐콰이어숲길, 습지생태공원 등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를 탐방할 수 있다.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방화근린공원내 제1코스 시작지점
개화산(開花山)
개화산(開花山)의 원래 이름은 주룡산(駐龍山)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 때에 주룡(駐龍)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이 산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 동자 두 세명을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飮 : 구구절에 용산에 올라가 술을 마시다)이라 하였다 하여 주룡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선생이 돌아간 후에 그 자리에서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고 그 이후부터는 개화산이라 일컬어 졌다고 한다. 선생이 살던 곳에 절이 세워 졌는데 처음에는 절 이름을 개화사(고려 공민왕 2년 1353년)라 하였으나, 개화사에 있는 좋은 약수 때문인지 조선 말기쯤에 약사사(藥師寺)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산 정상에는 조선조에 사용했던 봉화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또한 개화산에는 미타사라는 사찰(고려 후기 추정)과 사찰 옆에는 북한군과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호국 충혼 위령비가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약수터 3개소가 있다. 개화산은 자연경관의 보호와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개화근린공원, 꿩고개근린공원으로 결정 고시 되었으며 면적은 약 566,500㎡이며, 산 높이는 123.5m이다. 강서구청장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약사사 갈림길
약사사 개화산의 울창한 숲과 한강변을 비롯한 빼어난 주변 경치로 인해 겸재가 그림의 소재로 즐겨 찾았던 약사사! 신라때에 주룡 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이 산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 동자 두 세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셨으며, 선생이 살던 곳에 언제부터인지(고려 때) 절이 생겼고 절 이름을 개화사라고 하였다. 겸재의 ‘개화사’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절은 냉천이 있어 병자가 목욕을 하면 오랜 병도 낫는 약수터라고 하여 조선 말기쯤에 약사사로 불려졌다. 17세기 이전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알 수 없고, 다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인 3층 석탑과 제40호인 석불이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약 7~8백년의 역사가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강서구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약사사
겸재 정선이 바라본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 지금은 서울의 옛 모습이 개발과 파괴로 거의 사라졌으나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그림을 통해 300년 전 아름다운 서울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65세였던 1740년 추가을부터 70세까지 만 5년간 양천(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현령(縣令)을 지내면서 강서지역을 중심으로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림으로 남겼다.
개화사(開花寺) 개화사는 개화산에 있는 사찰로, 현재의 약사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행주산성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한강과 임진강이 마주치는 호해 풍광을 조망할 수 있으며,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 북악산, 남산, 관악산과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한강 상류의 물길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정선의 개화사 그림은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에 전해진다.
낙건정(樂健亭) 정성이 살던 시대에 이조판서를 지낸 김동필(1678~1737)의 별서인 낙건정을 그린 것이다. 행호강변에 절벽을 이루는 덕양산 줄기 끝자락 상봉 가까이에 큰 기와집 두 채가 있는데, 이것이 낙건정의 살림집과 정자로 보인다.
행호관어(杏湖觀漁) 행호에서 고기잡이를 보다 행호는 현재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덕양산 부근의 한강으로 호수처럼 넓다고 해서 행호라고 불린다. 중경의 산자락은 한강변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승경지로, 김동필(1678~1737)의 별서인 낙건정(樂健亭), 송인명(1689~1746)의 장밀헌(藏密軒) 등 당대 고관들의 별서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전망대
겸재 정선이 바라본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 지금은 서울의 옛 모습이 개발과 파괴로 거의 사라졌으나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그림을 통해 300년 전 아름다운 서울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65세였던 1740년 추가을부터 70세까지 만 5년간 양천(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현령(縣令)을 지내면서 강서지역을 중심으로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림으로 남겼다.
소악후월(小岳候月)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다 소악루는 이유(1675~1753)가 1737년경 창건한 누각으로, 현재 가양동 굴산 동쪽 기슭에 있었다. 왼쪽 하단에 소악루가 있고, 그 너머로 이유의 본채로 보이는 기와지붕들이 있다. 화면 우측변에는 탑산, 두미암, 선유봉을 차례로 배치시켰고, 원경에는 목멱산을 위시한 금성산, 와우산이 보름달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 아래 육중한 바위절벽인 잠두봉(절두산)이 있다.
금성평사(錦城平沙) 금성의 평평한 모래펄 양천 쪽에서 바라본 지금의 난지도 부근의 승경을 근처의 금성산에서 이름을 따와 화제를 짓고 화폭에 담은 것이다. 원래 난지도는 모래내와 홍제천, 불광천이 물머리를 맞대고 들어오는 드넓은 저지대라서 한강 폭이 호수처럼 넓어져 경치가 좋은 곳이다.
목멱조돈(木覓朝暾) 목멱산에 아침 해가 떠오르다 목멱산(남산)에 아침 해가 떠오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양천현아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목멱산은 강 건너 동쪽에 위치하게 된다. 동틀 무렵 태양이 중앙의 남산 중턱에 절반가량 걸려 있는 모습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고, 그 앞에 낮은 만리재, 애오개, 노고산, 와우산 등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전망대
호국충혼비/미타사 □ 호국충혼비 강서구 내촌마을길 19-8(개화동 산 81-3 미타사 옆)번지에는 6․25 한국전쟁 때 김포비행장을 지키던 육군 제1사단 12연대 3대대의 대대장 김무중 소령을 비롯한 전사자 1,100여명의 영령을 추모하는 호국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38선 접경의 황해도 연백지역 서부전선을 지키던 1사단 병력은 김포공항 쪽으로 후퇴하였다. 그들은 이곳 개화산에 방어진을 치고 인민군 6사단과 대항하였는데, 13연대와 15연대 일부를 포함한 1,100여명이 전사하였다. 6․25전쟁때 조국을 지키다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무명용사들이 애국충정을 기리며 국민들의 애국정신을 함양하고,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3년 12월 31일 충혼비를 세웠으며, 매년 6월이면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 미타사 개화산 미타사는 서울의 서쪽 끝 개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심 속에 있는 사찰이면서도 평온함과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육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곳으로 당시에 절의 모든 당우들이 전소되는 비운을 맞이하기도 했었다. 현재 미타사의 당우는 작은 법당과 요사가 전부인 단촐한 가람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아마도 100여년 전 창건 당시의 모습과도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미타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법당 옆 커다란 바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미륵불 입상이다. 절의 창건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이 불상은 무수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데, 이야기 속에 이 미륵부처님은 하나 같이 땅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강서구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미타사입구
호국충혼위령비 관리번호 : 10-2-5 소재지 : 강서구 개화동 산 81-13 관리주체 : 개화산전투전사자유족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무력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육군 제1사단 11, 12, 15연대 소속 장병 1,100여명은 김포지구로 후퇴하여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개화산에서 최후의 방어진을 치고 아군으로 위장한 적의 대병력을 맞아 전투를 벌였으나 본부와 통신이 두절되고 탄약과 보급이 끊긴 채 북한군의 수와 화력에 밀려 부대원 전원이 개화산 골짜기에서 장렬히 산화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호국충혼위령비는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기 위하여 개화산 전투에서 신명을 바치신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분들의 고귀한 업적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건립추진위원회가 1994년 6월 28일 건립하였다. 개화산전투전사자유족회와 국군 제1사단은 매년 6월에 위령제를 개최하여 전사자의 충혼을 기리고 있다.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미타사
김포(개화산)지구 전투 위령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무력 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자 초개같이 젊음을 바쳐 적의 총탄에 맞서 용감히 싸워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국을 수호한 1,100여명의 무명용사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육군전진부대 전우들이라 당시 전진부대 소속 11, 12, 15연대는 김포(개화산)지구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50년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적의 대병력을 맞아 최후의 일인까지 비행장을 사수함으로써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것이다. 이들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영광된 조국의 오늘이 있었으리라. 1,100여명 무명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업적을 기리며 그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여기에 비를 세운다. 1994. 육군전진부대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호국충혼비
미타사 석불입상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9호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 산 81-13 미타사는 고려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데, 석불만 남아 있었으나 1924년에 사찰이 중창되었고, 1937년에 미륵당으로 석불 보호각이 지어졌다. 석불입상은 전체 높이 320cm, 상 높이 293cm로 원래 현재 위치보다 높은 산 위쪽 흙속에 묻혀 있었으나 이곳 미타사로 옮겨지면서 대좌가 새로 조성되었다. 석불입상은 커다란 석주(石柱)같은 형태로 머리 위에는 원반형의 천개(天蓋)가 올려져 있다.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길게 새겨져 있으며 코는 높은 이등변 삼각형의 형태로 콧등이 편평하다. 목이 굵고 어깨가 각이 져 있으며, 두 손은 가슴높이로 올려서 수인(手印)을 짓고 있는데, 설법인(說法印)을 표현하려고 했던 듯하다. 통견식으로 입은 대의(大衣)에는 넓은 띠 모양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넓은 4개의 호형(弧形) 곡선을 이루며 치마 주름은 수직으로 음각되어 있다. 또한 발 부분은 별재(別才)의 돌로 조각되어 이어져 있다. 이 석불입상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경기, 충청 등 중부지방에서 유행하던 석불 유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미타사
풍산 심씨 묘역 조선 중기의 문신 심정(1471~1531)의 묘로, 묘역 안에는 그의 아들 심사손, 심사순, 손자 심수경 등 풍산 심씨 가문의 묘 60여 기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심정은 연산군 1년(1495)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화천군(花川君)에 봉해졌다. 중종 14년(1519)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결국 정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경주 박씨의 동궁 저주사건이 드러나서 강서로 귀양을 갔다가 이항, 김극핍과 함께 신묘삼간(辛卯三奸)으로 지목되어 죽게 되었다. 심정의 아들 심사손(1493~152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중종 18년(1523) 비변사낭관으로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워 많은 관직에 올랐다. 심사손의 아들 심수경(1516~1599)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명종 1년(1546)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명종 17년(1562) 중종의 묘를 옮길 때 경기도 관찰사로 나라에서 쓰던 큰 상여가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지 않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대사헌과 8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청백리에 추천되었고 선조 31년(1598)에 생을 마감하였다. 풍산 심씨 묘 60여기 중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 4분의 묘와 묘비, 상석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강서구 |
ㅇ 촬영일자 : 2012. 10. 21 외
ㅇ 촬영장소 : 개화산 풍산심씨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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