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 기화대사(己和大師) 부도탑 당호 : 涵虛, 법호 : 得通, 법명 : 己和 조선 태종 11년(1411년)에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대사의 사리탑으로 조선 초기 부도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함허대사(1376~1433)는 출가하기 전 성균관에서 유학을 익혔고 21세(1396)에 출가, 22세때 양주 회암사에서 무학대사에 가르침을 받았으며 42세(1417)때부터 금강경오가해를 강의하였다. 그 후 임금의 명령으로 대자사(大慈寺)에 머물기도 하였고 56세(1431)때에 문경 희양산 봉암사를 중건 58세(1433)에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금강경오가해’ 2권, ‘금강경륜관’ 1권,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설의’ 3권, ‘선종영가집과주설의’ 2권, ‘현정론’ 1권, ‘함허당 득통화상어록’ 1권이 있다. 함허대사의 사리탑은 현등사 외에도 그가 주석했던 강화도 정수사, 문경 봉암사, 인봉사 등 네곳에 세워져 있다. 가평군청 |
ㅇ 촬영일자 : 2006. 11. 04
ㅇ 촬영장소 : 운악산 현등사 부근
가평 현등사 소장 봉선사종(加平 懸燈寺 所藏 奉先寺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8호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257 원래 현등사의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서 만든(광해군 11, 1619) 종이었으나, 말사인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래 봉산사 종이었으므로 당연히 봉선사 대종(보물 제397호)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안정감과 양감, 장식성을 고루 갖추고 주물 상태도 좋다. 종의 중앙에 3줄의 띠 장식대를 둘러 상․하로 나누었다. 상단의 어깨 부분에는 연꽃이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에 상대와 4개의 유곽을, 아랫부분에는 가는 당초 문양대와 넓은 보상당초 문양대를 배치하였다. 한국 종의 특징인 음통이 없고, 종신에는 띠 장식이 둘러져 외래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종은 조선 초기의 범종 형식을 계승해 조선 중기에 조성된 종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한 외래형 범종의 계보를 이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ㅇ 촬영일자 : 2006. 11. 04
ㅇ 촬영장소 : 운악산 현등사 경내
현등사 삼층석탑(懸燈寺 三層石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산163 높직한 지대석 상면에 2층 기단을 구비한 높이 3.7m 규모의 일반형 삼층석탑이다. 하층기단은 불상의 대좌와 같이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대석에는 판 내에 장식문이 있는 연화문과 장방형의 액(額)이 공통적으로 조식되어 있으며, 중대석에는 대나무형의 원주(圓柱)로 된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는데, 기둥의 사이에는 장방형의 액을 모각하고, 상면에는 복연(伏蓮)이 조각된 갑석을 놓았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탑신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상륜부는 복발, 연주문, 보륜, 보주 등이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탑에서는 조선 세조 15년(1470) 현등사를 중수한 기록이 새겨진 사리용기가 발견된 바 있다. 석탑을 구성하는 각 부의 양식과 문양 등으로 보아 조선시대 전기인 15세기 경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
ㅇ 촬영일자 : 2006. 11. 04
ㅇ 촬영장소 : 운악산 현등사 경내
가평 하판리 삼층석탑 지진탑(加平 下板里 三層石塔 地鎭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호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산163 높이 1.7m 규모의 일반형 석탑이다.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현등사를 재건하면서 경내의 지기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세웠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어 일명 지진탑(地鎭塔)이라 불리고 있다. 가장 하단에 놓인 지대석에는 2단의 괴임대가 마련되었고, 네 귀퉁이의 합각이 뚜렷하다. 기단 갑석의 하면에는 부연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한 돌로 구성되었다. 각 층의 탑신석에는 모두 우주가 각출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단에는 1․2층이 4단, 3층은 3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으로 흐르다 전각에 이르러 급하게 반전되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만이 남아 있는데, 상면에는 지름 5cm의 찰주를 꼽기 위한 구멍이 있다. 현존하는 부재의 양식으로 보아 3층 석탑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ㅇ 촬영일자 : 2006. 11. 04
ㅇ 촬영장소 : 운악산 현등사 경내
민영환(閔泳煥) 암각서(岩刻書) 구한말(舊韓末)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이었던 민영환(閔泳煥)선생이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運命)을 걱정하며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歎息)하고 걱정하던 곳으로 1906년 나세환 외 12인의 의지(意志)로 이 바위에 “민영환(閔泳煥)” 이라 새겨놓은 암각서(岩刻書)가 남아 있어 “민영환(閔泳煥)” 바위로 부르게 되었으며 바위 주변 형상(形狀)은 강류(江流)를 기울여 놓은 듯 유유히 흐르는 거폭(巨瀑)으로 30~40° 기울어진 바위를 타고 흘러 그 밑에 큰 심연(深淵)을 이루니 폭(瀑)과 호(湖)를 겸유한 폭포라 하였으며 옛날 중국의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평생 소원으로 여기고 조선(朝鮮)에 와 금강을 찾아가던 도중 이 무우폭포(舞雩瀑布)를 구경하고는 기간금강이니 돌아 갈 수 밖에 없다고 하며 돌아갔다는 전설(傳說)이 전하여 오고 있다. 가평군청 |
ㅇ 촬영일자 : 2006. 11. 04
ㅇ 촬영장소 : 운악산 현등사 부근
삼충단(三忠壇) 가평군 하면 하판리 488-1 이 삼충단은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선생 세분 충신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이다. 서기 1905년 일제는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드디어 국권마저 침탈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당시 조병세 선생은 의정대신으로 있다가 가평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이 조약에 서명한 오적을 처단하고 하루 속히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며 항거하였으나 왜헌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고국중사민서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이고, 최익현 선생은 을미의병운동의 태두이었는데 소위 오조약의 체결을 보고 통분하여 다시 의병을 봉기하여 왜구토벌에 앞장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이송 구금되었으나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한 충신이다. 민영환 선생은 시종무관이었는데 을사조약을 보고 대한문 앞에 나가 석고대죄하며 국권회복의 상소를 올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이다. 이 삼충단은 일제치하이던 1910년 설단되었으며 1989년에 복원하고 매년 11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
ㅇ 촬영일자 : 2006. 11. 04
ㅇ 촬영장소 : 운악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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