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안내문

청계산(서울 서초) - 안내문

mouner(마우너) 2013. 5. 4. 00:43

 

 

원지동 미륵당(彌勒堂)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3호인 미륵불(彌勒佛)은 원터마을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으로 옛날부터 영험한 능력이 있어 매년 동제(洞祭)를 지냄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원터골입구

 

 

원지동 석불입상 및 석탑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3호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시 서초구 원지동 362-4, 362-5번지

 

이 석불입상은 225cm에 달하는 큰 규모로 원래 사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작은 미륵당 안네 모셔져 있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큰 기둥 같은 모습이고 표면에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있다. 이 불상은 머리가 커다랗고 머리 윗부분이 뾰족하며, 얼굴이 길고 어깨가 좁아 토속적이고 위축된 모습이다. 미륵당 옆의 바닥에는 이 불상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천개(삿갓머리)가 있으나, 석불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미륵당의 앞에는 작은 3층 석탑이 있는데 지붕돌의 귀퉁이가 훼손되었고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의 지붕돌 받침은 3단이며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이 석탑과 석불을 통해 볼 때 이 일대는 원래 절터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석탑과 석불만 남아 있다. 이 불상의 염험함이 알려져 이곳 주민들이 1년에 한번씩 동제를 지낸다.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원터골입구

 

 

청계산 원터골 생태경관보전지역

ㅇ 위치 : 서초구 원지동 산 4-38일대

ㅇ 면적 : 146,281㎡

ㅇ 지정일자 : 2004. 10. 20

ㅇ 특징

   - 청계산 주 등산로인 원터골에서 청계골로 넘어가는 북쪽 사면에 분포한 지역으로 서울시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갈참나무를 중심으로 한 습지성 낙엽활엽수림이 계곡을 중심으로 한 습지성 낙엽활엽수림이 계곡을 중심으로 잘 발달되어 있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 이 지역에서는 서울시 보호종인 박새, 쇠(오색, 청)딱따구리, 두꺼비 등이 관찰되고 있으며, 갈참나무, 개옻나무, 국수나무, 노린재나무, 느릅나무 등 습지성 낙엽활엽수군집과 조팝나무, 별꽃, 은방울꽃 등 다양한 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서초구 공원녹지과(2155-6870~4)

서울특별시 자연생태과(2115-7550~3)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원터골입구

 

 

청계산

청계산(淸溪山)은 이름 그대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이란 말이다. 청계산에는 원터골, 약초 샘골, 어둔골, 청계골 등 계곡이 어느 산보다 많은 편이다. 옛날에는 청계산(淸溪山)을 청룡산(靑龍山)이라고 불렀다.

과천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볼 때 청계산은 좌청룡(左靑龍)이라 청룡산(靑龍山)이요, 수리산은 우백호(右白虎)의 백호산(白虎山)이라 하였다. 높이 618m 주봉인 망경대를 비롯하여 매봉, 옥녀봉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에 관악산 632m, 남쪽에 국사봉 540m가 솟아 있으며, 이들 연봉과 더불어 서울의 남쪽 방벽을 이룬다.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능선은 비탈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산세도 수려하다. 이곳 청계산에는 활엽수림, 밤나무림, 아카시아림, 소나무림 등이 식생하고 있다. 나무를 심을 때에는 마치 자식을 기르듯이 조심조심해야 하지만 한번 심어두면 마치 버린 것처럼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것이 나무를 키우는 비결이다.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매바위 입구

 

 

청계산의 유래

청계산의 유래를 살펴보면 청계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고 한다. 그전에는 청룡산이라 불렀다. 청룡산의 유래는 과천 관아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볼 때 과천 관아의 왼편에 산이 있어 마치 풍수지리의 ‘좌청룡’ 형국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수리산을 관악산의 오른편에 있다 하여 백호산이라고도 불렀다.

 

청계산과 연관된 시조

목은 이색(고려말 학자)

 

청룡산 아래 옛절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들과 계곡에 잇닿았구나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종소리 처음 울리고

닭이 깃들려 하네...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매바위입구

 

 

안내문

국립지리원에서는 측량법령에 따라 우리나라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국가기준점인 삼각점을 설치하여 공공 및 민간분야에서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각점은 전국에 일정한 간격으로 16,000여점이 설치되어 지도제작, 지적측량, 건설공사, 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을 위한 기준점으로 이용되는 국가 중요시설물로서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이러한 삼각점은 누구든지 파손하거나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되며 만약 무단으로 훼손하는 경우에는 이 지역의 모든 측량을 실시할 수 없으며 관련자는 측량법령에 따라 벌을 받게 되오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설치된 삼각점(수원 404)의 위치는 표주의 십자선 중심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 동경 : 127°2′58″

- 북위 : 37°25′41″

- 높이 : 약 494m

2002. 8.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장

전화 031)210-2651~2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매봉입구(헬기장)

 

 

충혼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12-2-3

관리자 : 특전교육단, 6.1 유족회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청계산 중턱(성남시 서북방 7Km)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창공의 꽃으로 피어 후배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한 영령들을 기리며...

세계 최강의 특전부대 용사로 거듭나기 위한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은 3주간의 지상 훈련을 마치고 1982년 6월 1일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C-123)에 탑승하였다. 서울시 거여동 소재 강하장으로 이동하던 중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은 공군 수송기는 청계산 상공을 비행하던 중 추락하였고, 당시 수송기에 탑승하였다가 사망한 특전교육단 장병 및 교육훈련 기간 중 순직한 영령 53인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충혼비를 청계산에 건립하였다. 이들 53인(특전교육단 교관 5명, 교육생 44명, 공군부대원 4명)의 유해는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의 31, 32번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매바위 부근

 

 

청계산(淸溪山) 혈읍재(血泣재)

조선조 영남 사림의 거유인 일두 정여창(세종 32[1450]~연산군 10[1504]) 선생이 성리학적 이상 국가의 실현이 좌절되자 은거지인 금정수터를 가려고 이 고개를 넘나들면서 통분해서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하여 후학인 정구가 혈읍재라 명명하였다. 정여창 선생은 청계산 金井水(망경대 아래 석기봉 옆)에서 은거하다 결국 연산군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과 함께 유배후 사사되었다. 그후 갑자사화때 종성땅에서 부관참시 당했다.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혈읍재

 

 

석기봉

성남시 선정 우수 일출명소

해뜨는 시간

1월 : 07:35~07:55

3월 : 06:50~07:10

6월 : 05:00~05:20

9월 : 05:50~06:10

12월 : 07:25~07:45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석기봉 헬기장

 

 

松山 조견선생과 망경대(望京臺)

송산 조견선생(1351~1425)은 여말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이고 초휘는 윤, 자는 거경, 호는 송산, 시호는 평간공이다. 고려 충렬왕때 문하시중을 지낸 조인규의 증손이고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의 아우이다.

고려말 영남안렴사로 있을 때 나라가 망하자 통곡하며 두류산(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견으로 고치고, 자도 종견이라 하였다. 조선 개국초에 이태조가 공의 절개를 찬양하고 재능을 아껴서 호조전서에 명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청계산으로 은거하여 건너편 상봉인 망경대에 자주 올라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슬퍼하다가 마왕굴 샘물로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본래 상봉에 오르면 눈아래 만경(萬景)이 전개된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었으나 그곳에 자주 올라 개경을 바라보았다하여 세인들이 ‘망경대’라 부르게 되고 세간에는 망경대의 노래도 유행되었다고 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정도한 후 다시 조준을 대동하고 청계사로 찾아가 옛친구 사이로 마주 앉아 도와줄 것을 간청했지만 공의 굳은 절의를 돌이키지는 못하고 청계산 일대를 봉지로 내렸으나 公은 곧 양주 수락산 기슭(현 의정부 송산마을)으로 옮겨 은거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묘소는 성남시 여수동 산 30번지에 예장(성남시 향토유적 제3호)되었고 모셔진 서원은 양주의 정절사(사액서원), 의정부의 송산사(경기도 문화재 제42호), 공주의 송산 조견사우(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8호) 등이 있다.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절고개 능선

 

 

 

이수봉(해발 545m)

조선 연산군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류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2000. 12. 상적동 주민일동이 세움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이수봉

 

 

청계산(淸溪山)

청계산은 백두대간의 지맥으로 한남정맥의 한 줄기에 해당하며 산세가 수려하고 항상 맑은 물이 넘쳐 흐른다하여 예부터 청계산이라 불러 왔습니다.

최고봉인 망경대는 해발 615m로서 이수봉(547m)과 함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며, 1.5Km에 달하는 계곡에는 머루와 다래넝쿨, 박달나무 등 각종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 숨쉬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 산은 고려말의 명신으로 충절을 지켰던 목은 이색, 야은 길재, 송산 조견 등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조견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형 조준이 벼슬하기를 권하였으나, 이를 물리치고 청계산에 은거하면서 고려가 멸망한 것을 비통해하며 정상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고 슬퍼하였다하여 만경대(萬景臺)를 망경대(望京臺)로 고쳐 부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서울 남쪽의 명산으로 알려진 청계산은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쉬는 천혜의 자원으로 우리가 아끼고 보살펴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연 휴식처입니다.

성남시 수정구청장 

ㅇ 촬영일자 : 2013. 04. 28

ㅇ 촬영장소 : 청계산 어둔골